장기 육아휴직 제도와 출산장려정책의 균형 있는 설계 방안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장기 육아휴직 제도의 설계와 경력 복귀 지원은 출산장려정책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많은 정부가 육아휴직 기간을 연장하고, 육아휴직 급여 수준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 제도를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쓰고 난 후의 복귀’다. 즉, 출산은 했지만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거나, 돌아가더라도 동일한 지위와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는 구조는 출산장려정책의 구조적 실패를 의미한다.
특히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아지고, 맞벌이가 기본값이 된 현대사회에서는 육아와 노동을 분리하는 정책은 더 이상 효과를 갖기 어렵다. 출산 이후에도 끊기지 않는 경력의 흐름, 복귀 후에도 존중받는 업무 환경이 마련되어야 진정한 출산 친화적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장기 육아휴직과 경력 복귀 정책을 둘러싼 국제 비교를 통해, 어떤 정책이 실효성을 갖는지 살펴보고, 한국형 출산장려정책의 재설계 방향을 제시한다.
스웨덴 출산장려정책: 유연한 육아휴직과 경력 보호가 결합된 선진 모델
스웨덴은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출산장려정책을 운영하는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장기 육아휴직 제도와 경력 복귀 정책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부모는 자녀 1인당 총 480일의 유급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으며, 이 중 90일은 아버지에게 할당되어 있어 남성의 육아 참여도 제도적으로 강제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육아휴직이 단절이 아닌, ‘경력의 연장선’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구조적 특징이다. 정부는 육아휴직 복귀자를 대상으로 기존 직무 복귀 보장뿐 아니라, 복귀 후 재적응을 위한 단계별 업무 조정, 육아기 탄력근무 지원, 경력단절 방지 교육 프로그램 등을 제공한다. 특히 노동법상 고용주는 출산과 육아로 인한 불이익을 줄 경우 강한 처벌을 받게 되어 있으며, 이는 노동시장 전반에 ‘출산은 경력의 위기가 아니라 일상의 일부’라는 사회적 인식을 확산시키는 기반이 되었다. 스웨덴의 사례는 출산장려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선 휴직의 길이만이 아니라, 복귀 후의 삶까지 고려한 설계가 필수적임을 보여준다.
독일 출산장려정책: 탄탄한 육아휴직급여와 복귀 보장을 병행
독일은 ‘엘턴게르트(Elterngeld)’라 불리는 육아휴직 급여 제도를 통해 부모의 출산 이후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한편, 경력 복귀 프로그램도 병행하여 일과 가정의 균형을 제도화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부모가 육아휴직을 사용할 경우, 기존 소득의 65~67%를 최대 14개월까지 지급받을 수 있으며, 부모가 함께 나누어 사용할 경우 최대 기간이 늘어난다.
육아휴직 종료 이후에도 고용주는 기존 직장으로의 복귀를 보장해야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노동청의 감사를 받는다. 특히 독일은 중소기업에도 ‘경력 복귀 트레이닝’을 법제화하여, 복직 후 업무적응 기간 동안 교육과 업무 재조정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시스템 덕분에 독일 여성의 출산 이후 경제활동참가율은 70% 이상으로 높게 유지되고 있으며,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도 꾸준히 증가 중이다. 독일식 출산장려정책은 경력 보호 없이는 출산도 없다는 전제 위에 구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출산장려정책: 제도는 있지만 현실은 눈치와 경력 단절
일본은 법적으로 최대 1년의 육아휴직을 보장하고 있으며, 육아휴직 수당은 고용보험을 통해 지급된다. 제도적 틀은 갖추어져 있지만, 실상은 육아휴직 사용을 둘러싼 직장 내 눈치 문화, 복귀 이후의 업무 배제, 승진 누락 등의 문제가 만연하다. 특히 여성의 경우, 출산을 계기로 아예 퇴직하는 사례가 여전히 많으며, 이를 반영하듯 일본의 출산 이후 여성 경력단절률은 OECD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다.
또한,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도 매우 낮으며, 일부 기업은 형식적으로 휴직을 승인하되 실제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일본의 출산장려정책은 제도적 기반은 있으나, 현장 문화와 경력 설계가 따라오지 못하면서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사례로 분석된다. 경력을 지속할 수 없다는 불안은 결국 출산 자체를 주저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 출산장려정책: 휴직은 늘었지만 복귀 후 경력은 사라진다
한국도 육아휴직 제도 자체는 선진국 수준으로 확대되어 있다. 부모 모두 최대 1년의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으며, 육아휴직급여도 단계별로 상승해 현재는 최초 3개월은 통상임금의 80%를 지급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제도가 고용안정과 경력 유지를 전제로 하지 않는 구조에 있다는 점이다.
많은 여성들이 육아휴직을 사용한 뒤, 복귀 시 원래 업무가 아닌 부서로 전환되거나, 아예 대체인력으로 대체되어 복귀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기도 한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육아휴직 사용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가 여전히 강하고, 경력단절 여성의 취업 재진입률은 매우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또한,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도 형식적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실제로 남성이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조직문화는 드물다. 결국 한국의 출산장려정책은 육아휴직 제도라는 틀은 있으나, ‘경력 복귀가 보장되지 않는 제도’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출산장려정책은 ‘복귀까지 설계된 휴직’이어야 한다
진정한 출산장려정책은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해주는 정책이 아니라, 아이를 낳고도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정책이어야 한다. 장기 육아휴직은 부모에게 필요한 권리이지만, 그 권리가 실제로 사용되고, 사용한 뒤에도 경력과 노동의 연속성이 유지되는 시스템이 동반되어야만 정책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이를 위해 우선, 정부는 육아휴직 후 복귀 시 동일 직무 또는 유사 직무 복귀를 법적으로 의무화하고, 이를 위반한 사업장에 대한 처벌과 행정지도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복귀 이후 일정 기간 동안 업무 재적응 프로그램이나 ‘리턴십 제도’를 전국 단위로 확산할 필요가 있다. 경력단절 여성에 대해서는 단순 재교육이 아닌, 기업 내부 직무로의 재진입까지 지원하는 맞춤형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또한,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남성 육아휴직 우수기업에 대한 인센티브(세제 혜택, 정부사업 우선 배정 등)를 제공하고, 남성 육아휴직 활성화 캠페인을 지속해야 한다. 휴직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출산과 함께 삶의 가치 균형을 조정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사회 전체가 받아들이는 문화가 필요하다. 출산장려정책은 출산만이 아니라, 출산 이후 ‘내가 누구인가’를 지켜주는 정책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