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한국의 극심한 저출산 문제를 두고 단순히 청년 세대의 개인적 가치관 변화로만 해석한다.
하지만 현실은 훨씬 복합적이다.
결혼과 출산은 결국 긴 호흡으로 계산해야 하는 경제적 선택이다.
한국은 2024년 기준 합계출산율 0.7명대라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저출산 국가가 되었다.
정부는 매년 수십 조 원의 예산을 출산장려정책에 투입한다.
영아수당, 부모급여, 첫 만남이용권, 각종 출산지원금과 돌봄 바우처까지 종류는 많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부모가 체감하는 불안 요소는 전혀 사라지지 않는다.
그 핵심은 바로 ‘내 일자리는 안전한가?’라는 근본 질문이다.
정규직이 아닌 이상 휴직 후 내 자리가 보장될까?
중소기업이나 파견직 근로자는 휴직 기간 동안의 대체 인력은 누가 채우나?
이 불안이 해소되지 않으면 부모는 첫째도 어렵고, 둘째 셋째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즉, 고용 형태는 단순한 고용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이 실패해 온 수십 년 출산장려정책의 뿌리와 연결돼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출산율 격차는 구조적이다
많은 사람이 “법으로 육아휴직이 보장돼 있지 않나?”라고 말한다.
맞다.
한국은 OECD 평균 이상의 육아휴직 급여 구조를 갖고 있다.
문제는 ‘누가 실제로 쓸 수 있느냐’이다.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여성 정규직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75%를 넘는다.
그러나 비정규직 여성의 사용률은 20%대 초반에 그친다.
이는 단순한 숫자 차이가 아니다.
정규직은 육아휴직 이후에도 복귀할 자리가 안정적으로 보장된다.
심지어 경력 평정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인사 규정이 일부 작동한다.
반면 계약직과 파견직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아이를 낳으면 바로 재계약이 어려워지고, 경력 단절은 생계 위기로 이어진다.
플랫폼 노동자나 프리랜서는 육아휴직이라는 제도 자체가 사문화된 상태다.
일본도 구조는 같다.
세계 최초로 육아휴직법을 도입했다고 하지만, 파견·계약직 실사용률은 거의 ‘0’에 가깝다.
이런 구조에서 현금 지원은 아무 의미가 없다.
출산율은 ‘고용 형태가 안정적이면 출산 가능성이 올라간다’는 사실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 점을 무시한 출산장려정책은 근본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유럽형 출산장려정책은 왜 고용과 결합되어 성공했는가
북유럽과 서유럽 일부 국가는 이미 50년 전부터 저출산 문제를 예견하고,
출산장려정책을 설계할 때 가장 먼저 ‘고용 안정성’을 뼈대로 삼았다.
스웨덴의 부모보험은 세계적 모범 사례다.
정규직, 계약직, 파트타임, 프리랜서까지 누구든 동일한 권리를 가진다.
총 480일의 육아휴직을 쓸 수 있고, 남성은 반드시 일정 기간을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이 제도를 쓰지 않으면 부모가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줄어든다.
노르웨이도 비슷하다.
계약직이라도 육아휴직 사용 후 계약 해지 시 정부가 강력한 행정제재를 가한다.
핀란드는 기업이 육아휴직 대체 인력을 채용하면 정부가 인건비 일부를 지원한다.
이 구조 덕분에 기업도 불이익 없이 직원의 휴직을 받아들인다.
프랑스는 가족수당과 국공립 보육이 저소득층과 비정규직 부모에게 더 넉넉하다.
또한 동네마다 국공립 어린이집이 밀집되어 부모가 일터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 모든 시스템이 부모에게 ‘아이를 낳아도 고용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심리적 안전망을 준다.
그래서 첫째 출산 후 둘째 셋째까지 이어지는 선순환이 가능하다.
이것이 유럽형 출산장려정책의 가장 큰 강점이다.
한국과 일본은 왜 같은 패턴으로 실패를 반복했는가
한국은 출산장려정책에 투입하는 현금성 지원만 보면 세계 1위 수준이다.
첫 만남이용권, 부모급여, 영아수당, 지자체별 현금 지원 등 항목만 수십 가지다.
그런데 왜 출산율은 역대 최저를 매년 갱신하는가?
고용 구조 때문이다.
청년층은 첫 직장에서 계약직·단기계약·인턴 형태로 시작한다.
첫 직장부터 불안정하면 결혼과 출산은 자연스럽게 미뤄진다.
중소기업 근로자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육아휴직 급여는 국가가 주지만 대체 인력 비용은 기업이 떠안는다.
직원 수가 적은 회사일수록 대체 인력을 뽑기 어렵고, 휴직은 곧 경력 단절로 이어진다.
일본도 에인절플랜, 뉴에인절플랜 등 화려한 정책을 수십 년간 내놨지만,
장시간 근로문화와 파견직 차별 구조는 그대로다.
출산율은 1.2명 아래에서 정체되고 있다.
결국 고용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어떤 출산장려정책도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두 나라가 증명한 셈이다.
한국이 진짜 바꿔야 할 고용 연계형 출산장려정책의 실전 해법
이제 한국의 출산장려정책은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첫째, 정규직·비정규직 구분 없이 모든 근로자가 육아휴직을 쓸 수 있도록 복직 의무와 보호 장치를 법으로 강화해야 한다.
둘째, 중소기업이 육아휴직 대체 인력을 고용할 경우 정부가 최소 50% 이상 인건비를 보조해 기업 부담을 덜어야 한다.
셋째, 파견·계약직 근로자에게도 가족수당, 무상 보육, 방과 후 돌봄 같은 기본 돌봄 안전망을 동일하게 제공해야 한다.
넷째, 청년 첫 직장이 계약직에 머물지 않도록 정규직 전환 지원금과 청년 고용 장려금을 더욱 현실화해야 한다.
다섯째, 가족친화기업 인증제를 실질적으로 운영해 이행하지 않는 기업에는 불이익을 주고, 성실한 기업에는 세제 혜택과 정부 지원을 더 확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말로만 ‘가족친화’를 외칠 게 아니라 기업의 현실을 파악해 대체 인력 채용 플랫폼, 지역별 인력 풀 등 실무 지원도 병행해야 한다.
고용이 안전해야 출산이 가능하다.
돌봄이 국가와 기업에 의해 보장되어야 부모는 둘째, 셋째를 생각한다.
이제는 고용 안정 없는 출산장려정책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래야 한국 사회는 마침내 저출산 악순환의 사슬을 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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